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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현충인물

김종식 해군대령


김종식 해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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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된 김종식 대령은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였다. 그는 광복이 되자 중국에서 단신으로 조국에 돌아와 1948년 3월 해군사관학교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입대한 후 같은 해 9월 해군소위로 임관하고 이듬해인 1949년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1949년 4월 15일 해병대 창설 기념식이 거행될 때까지 선발대 요원으로 활약했다.

해병대 초창기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며 초석을 다지던 김 대령은 창설된 지 불과 1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민족 최대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한다. 8월초 광복절을 넘기지 말라는 북한 지휘부의 명령아래 대대적인 총공세로 밀고 내려왔고 전세는 이미 심각하게 기운 상태였다. 대한민국은 부산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이남 땅만을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힘겹게 지켜내고 있었다. 사실상 부산이 점령당하면 민주주의 정권은 한반도에 남아있지 않게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김 대령을 포함한 해병대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 진동리 지구에서 수류탄전을 전개하는 과감한 공격을 펼치며 적 정찰대대를 기습 타격했다. 대한민국이 진동리지구 전투에서 승리하며 마산을 거쳐 부산을 점령하려는 북한군 최정예 사단의 공격을 완전히 격퇴하고 북한의 침공을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예봉을 꺾어 총반격전의 기틀을 만들었다. 6·25전쟁사 중 처음으로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는 영예도 안았다. 귀신 잡는 해병대의 신화를 쓴 김 대령은 대한민국 해병대 최초의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 6·25전쟁의 운명을 바꾼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며 연전연승을 거뒀다.

김 대령은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952년 3월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비장한 결의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으며, 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중공군과 북한군에게 원수를 갚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결의로 묘지에「고(故) 해군(海軍) 소령(少領) 김종식(金鍾植) 지묘(之墓)」라고 팻말을 꽂아 놓고 출전하기도 했다. 그는 6·25전쟁기간 동안 해병대가 수행한 거의 모든 전투에 참전하였고, 휴전 이후에는 해병대 1연대장, 헌병감을 역임하며 ‘무적해병’의 전통을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부는 김종식 대령에게 구국·애국·호국의 위대한 업적으로 무공훈장(을지·충무)을 수여하고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제1묘역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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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최종수정일 :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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