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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현충인물

8월의 현충인물

김옥련·부춘화 애국지사


김옥련·부춘화 애국지사
사이버참배
-김옥련·부춘화 애국지사-
제주지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 중심에 선 독립운동가

국립대전현충원 8월의 현충인물인 ‘김옥련·부춘화 애국지사’는 1930년대 일제의 강력한 민족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꽃처럼 타올랐던 우리나라 최대의 어민운동이자 여성운동이며, 제주 3대 항일운동 중 하나인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이끈 주역이다.

김옥련 애국지사는 1932년 1월 해녀 1천여 명이 참가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907년 제주 구좌 하도리에서 가난한 집안 막내딸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 탓에 낮에는 물질을 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노동독본·산술·글쓰기 등을 배우며, 일제의 부당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항일 의식을 키웠다. 김옥련 애국지사는 일제의 착취를 저지하고 해녀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항일단체인 ‘소녀회’의 회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부춘화 애국지사는 1932년 1월 해녀 1천여 명이 참가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908년 제주 구좌 하도리에서 빈곤한 집 장녀로 태어나 15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물질을 하고, 밤에는 야학을 하며 역사적·시대적 상황과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부춘화 애국지사는 일제의 착취를 저지하기 위해 해녀들을 단결시키는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항일단체인 부녀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1928년 제주 해녀조합 산하 구좌 해녀조합의 대표로 활동했다.

1930년대 접어들면서 일제는 정치적 주권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침탈에 총력을 기울였다. 해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제주도 해녀조합이 철저히 어용화되었고, 그 횡포가 극에 달했다. 1931년 여름 참다못한 구좌 하도리 해녀들의 거센 저항이 도화선이 되어 대규모 항일투쟁인 제주 해녀 항일운동이 분연히 일어섰다.

1932년 1월 7일 세화 장날을 이용해 김옥련·부춘화 선생 등이 주축이 되어 해녀조합의 부당한 침탈 행위를 규탄하는 항일운동이 열렸고, 12일에는 1천여 명의 해녀들이 다구치 제주도사 일행을 향해 호미와 빗창을 들고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라고 외치며 용감하게 일제와 맞서 싸웠다. 해녀들의 권익을 위해 일본 관리와의 담판 요구 조건을 관철시킨 두 분의 애국지사는 이 사건으로 시작된 일경의 대대적인 민족운동가의 검거를 저지하려다 체포되어 수개월간 혹독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던 두 분의 공훈을 기려 김옥련 독립유공자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고, 부춘화 독립유공자에게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김옥련 ·부춘화 독립유공자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잠들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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