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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제 순국선열


조희제 순국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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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12월 10일 전북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에서 태어난 조희제 순국선열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맞서 의병을 준비할 만큼 애국의식이 투철했던 부친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기우만 의병장, 순절지사 송병선의 문하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항일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던 임실에서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재산을 털어 임실 ․ 순창 ․ 남원 등지에서 활동하던 의병을 직접 도왔으며, 옥고를 치르던 애국지사의 뒷바라지도 도맡으며,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았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투철한 항일의식을 갖고 있는 부친 조병용의 영향과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자살을 한 스승 송병선,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른 기우만의 영향으로 항일의 방안을 찾던 중 독립투사들의 항일사적과 애국지사들의 충절기록을 수집하여 『염재야록』을 편찬하게 된다.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투사들의 항일사적과 행적 등 항일 투쟁 기록을 모았으며,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의 재판과정을 방청하며 기록하기도 하였다.
특히 명성을 떨치고 그 행적이 역사에 잘 기록된 인사보다는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기록하였다.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모음 자료를 일찍이 윤문 작업을 마치고 평소 교류하던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해, 김영한이 교정을, 최병심이 서문을 썼으며, 이병은이 발문을 지었다.

선생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책의 표지에 덕촌수록이라 이름을 붙였으며, 1질은 책상 위에 두고, 1질은 궤짝에 넣어 마루 밑 땅에 묻었다.

선생의 항일투쟁 기록이 1938년 일제에 알려지자 최병심, 이병은, 김영한 등과 함께 임실경찰서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 선생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석에 누워지내다가 상투를 자르라는 일제의 단발 종용에 “상투를 잘라 목숨을 늘리는 짓을 나는 하지 않겠다”며 66세 되던 해 자결 순국하였다.

다행이 마루 밑에 보관해 두었던 덕촌수록은 해방 후 선생의 제자인 조현수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1-1묘역 466호에 안장하여 공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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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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