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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 해병중장 김두찬


애국지사 · 해병중장 김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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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찬 애국지사·해병중장

- "항일운동과 서해도서작전의 주역"

1922년 평남 강동에서 태어난 김두찬 애국지사·해병중장은 평양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1936년 일제의 황민화정책 가운데 하나인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구류 처분을 받았으며, 1938년에 동지 김길순 등 6명과 함께 항일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독립투쟁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다 실행이 어렵게 되자 1943년 일본군의 군수시설인 황해도 겸이포제철소 용광로를 폭파하려 계획하였으나 일경에 발각되어 1943년 11월 피체되었고 국내로 송환되어 1944년 6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육군사관학교 1기에 입교하여 과정을 이수하던 중 해군에 전입하였고, 같은 해 5월 해안경비대 견습사감을 거쳐 1946년 12월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지휘관으로서 영덕, 영월, 홍천지구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중공군의 개입 이후 열세로 돌아선 전황을 타개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던 서해도서작전으로 동·서해안에서 적의 접근을 완벽히 봉쇄하였다. 도서작전은 서해 석도에 대대본부를 두고 초도를 확보하는 한편, 백령도 연평도에 각각 상륙하여 경비 및 기습상륙 등을 전개하는 작전이었다.

아울러 동해의 원산만 전면의 9개 도서를 점령 확보함으로써 동서 해안에서 적의 보급물자와 병력이동에 대한 봉쇄작전을 수행하는 등 중공군과의 전투과정에서 간과되었던 해안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전쟁 중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1년 해병대 부사령관, 1962년 해병대 사령관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위관급 이하의 행정실무장병 양성, 산악훈련장 개설과 행정백서 편찬 등으로 해병대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고전 연구를 비롯한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김두찬 애국지사·해병중장은 국제대학, 단국대 등을 거치며 문학박사를 수여받았고, 특히 고려 「남명집」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한글 창제 이전의 우리말의 실상을 추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정부는 김두찬 지사의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 193호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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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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