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이달의 현충인물

3월의 현충인물

박경수 해군상사


박경수 해군상사
사이버참배
3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된 박경수 해군 상사는 1981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2001년 해군 부사관 188기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다를 당당하게 지키던 2002년 여름,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6월 29일 그날 서해바다 한 가운데에서 포성이 울렸다.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으로 시작된 제2연평해전은 25분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우리군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수리호(357호정)가 침몰했고 6명의 용사가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그해 여름, 조국과 국민을 온 몸으로 지켜낸 영웅들이 있었고 그 영웅 속에 박경수 상사도 있었다.

그는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함정과 마주보고 있던 동료 사수가 총탄에 쓰러지자 본인 또한 총탄을 맞아 중상이었으나 동료를 대신해 기관총을 부여잡고 조국을 지켜낸 용사였다. 주위에서는 쓰러진 동료를 대신해 싸운 그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지만 배만 보면 머리에 총을 맞아 쓰러진 동료가 생각났고 악몽으로 수년 동안 항해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 박경수 상사는 강한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2009년 6월 5일 해군 2함대 22전대 천안함 보수사로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경수 상사의 운명은 너무 야속했다. 연평해전 당시 국무총리 전투유공 표창까지 받았던 그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을 받고 전사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서해 최전선을 지키던 대한민국의 아들 46용사가 전사하고 실종자 구조 작업 중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게 되면서 6·25전쟁 이후 북한 도발에 따른 우리군 피해가 가장 컸던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바다보다 더 푸르렀던 박경수 상사는 모든 임무에 최선을 다한 참 군인이었고, 제2연평해전 당시 총탄에 부상을 입고도 동료를 구한 영웅이었다. 정부는 박경수 상사에게 살신보국 정신의 공로를 기려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고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제3묘역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