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일본 횡빈전문학교 재학 중 동경 유학생 배종윤 등과 결합하여 창씨개명․우리말 폐지 등의 식민정책에 반대하며 민족의식을 길렀으며,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여 조선인 유학생의 단결을 도모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이듬해 동경지방재판소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남
1943년 동교 후배들을 동지로 포섭하여 10여차례의 모임을 가지는 등 독립에 대한 준비를 추진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이듬해 횡빈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혹독한 고문으로 옥중 순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