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24일 밤 9시 공주면 대화정 영명학교 교실에서 교사 김관회,이규상,현언동, 졸업생
김사현, 학생 오익균,안성호, 목사 현석칠 등이 모여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에
공감하고 4월 1일 오후 공주 장날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함. 4월 1일 학생 노명우,유준석 등은
선언서를 각각 100매 휴대하고 학생 강윤,윤봉균과 학교 조수 김수철등은 태극기를 하나씩 들고
공주시장으로 나가 오후 2시 군중에게 선언서를 살포하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침.
그러나 일경의 신속한 제지로 만세운동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기까지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