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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보기

구 분경찰

  • 성명강덕흥 (姜德興)
  • 묘소위치경찰 1묘역 504-231
  • 출생/사망 시기 1922.8.12 / 1951.5.26
  • 출생/사망 지역 평북 강계 /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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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흥 경위는 1922년 8월 12일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전천면(前川面)에서 태어나 경찰에 투신하여 충청북도경찰국에서 근무함

호남 동부지역과 영남 서북부지역에는 1948년 10월 이후부터 여수·순천반란군잔당과 지방공비 들이 있었으며, 특히 한국전쟁 초기에 호남지역 및 경상북도지역으로 남하한 북한군 제6사단과 제4사단의 일부 병력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초반격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지방공비와 합세하여 호남지역과 경상북도 내륙지역에서 병참선차단, 식량약탈, 관공서습격, 양민학살 및 납치, 방화 등 갖은 만행을 자행함

1951년 1월 말 중공군의 선정공세시 제천 남쪽까지 진출했던 북한군과 안동까지 진출했던 북 한군 제10사단의 패잔병들이 주변 산악지역으로 도주하여 지방공비와 합류하여 태백산, 일월 산, 속리산, 보현산, 동대산 일대에서 유격활동을 전개하자 이에 국군 제11사단은 1950년 10월 4일부터 1951년 4월 6일까지 호남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이때 배속된 일부 경찰 및 청년방위대는 주보급로와 통신선 경계임무를 수행하였다. 그후 제8사단은 4월 3일 전 주로 이동하여 제1경비대대, 제18전투경찰대대, 충남경찰토벌대, 청년방위대 제153지대를 배속 받아 금산, 정읍, 부안지구에서, 제16연대는 진주로 이동, 제2경비대대를 배속받아 백운산과 중 산리 일대에서 1951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함

강덕흥 경위는 청주지역에 출현한 공비와 교전하다가 1951년 5월 26일 전사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功勳)을 기리어 경사에서 경위로 추서하였으며,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 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국립대전현충원에 경찰 제1묘역 504-231 호에 안장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대전현충원묘적부」「호국전몰용사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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