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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소감문

제 목(제9회)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4-01-10
  • 조회수2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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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동대전초등학교 장다연




36951, 현충원에 계신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묘비번호이다. 명절이나 휴가때 강원도에 가면 너무나 이뻐해 주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월남 파병 용사로 30년 넘게 직업군인으로 근무하시다 육군 상사로 제대하셨다고 한다.

보고 싶은 할아버지 이제 돌아가신지 3년이 다 되어간다. 다행스럽게 대전에 현충원이 있어 우리 가족들은 생신때나 휴일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현충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인 지금까지 현충원으로 체험학습을 많이 나왔기 때문에 나는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도 아무생각 없이 놀러가는 기분으로 의무적으로 갔을 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현충일을 기해 우리가족은 모두 할아버지께 참배하러 갔다. 조용히 절을 하신 후 아빠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다연아 여기 현충원에 안장되신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야.“ 하시며 일일이 가르치시며 ”저기 위쪽 보이지? 그곳에는 무차별적인 북한의 침공으로 발생된 천안함 참사에 희생되신 숭고한 젊은 군인오빠들, 삼촌들 그 옆에는 시민의 안전과 구조를 위해 출동했다가 희생하신 경찰, 소방관 아저씨들이 안장되이 있단다. 그 분들은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인생과 목숨을 던지신 훌륭한 분들이야. 그래서 나라에서도 존경과 그 분들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국립대전현충원을 설립하여 모시고 있는 거야“ 하시며 말씀해 주셨다. 그때서야 달력에 빨간글자. 그래, 학교 안가고 쉬는 날 현충일까지고 놀러 야외로 가자고 아빠를 졸라대던 내 모습이 떠올라 한없이 부끄러웠다.

난 다시 주변을 잘 살펴보았다. 할아버지가 안장되신 바로 옆에는 묘비 앞에 다른 곳과 다르게 화려한 꽃과 예쁜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유리상자 안에는 어린아이의 돌잔치 사진, 마냥 행복해하며 가족들과 찍은 여러 장의 사진과 일기장, 시계, 편지가 들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웃는 대학생 오빠의 사진과 "이제 볼 수 없기에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 죽어서도 보고 싶어" 언제나 사랑해! 하고 쓰여 있는 엄마의 편지글을 읽는 순간 한없이 눈물이 났다.
누구일까? 난 궁금해서 묘비 뒤를 살펴보니 출생과 마지막 돌아가신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군대에서 복무 중 사고로 돌아가신지 1년밖에 안된 것이다. 살아계셨으면 이제 23살.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까. 공부고 하고, 여행도 다녀야 할 대학생 오빠! 가족들은 할 하루 그리움에 보고파 얼마나 슬퍼했을까!

그때 아빠께서 내 등을 토닥거리며 “우리 다연이 무슨 일 있어? 왜 울어”하시며 살짝 안아 주셨다.
“아빠 이 삼촌 너무 불쌍해요” 하며 아빠를 쳐다보자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조용히 이끄셨다. 한걸음, 한걸음, 다음 묘비도 그 다음 묘비에도 태어난 년도는 수십년씩 차이가 났지만 16세, 18세, 20세, 너무나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학도병으로 참전하신 분들이라 이렇게 어린나이에 돌아가신 분들이야. 다연아, 오빠보다 한 두 살 위라고 생각해 봐라”는 아빠 말씀에 난 잠시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난 그분들처럼 나라를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할 수 있을까! 다른 이를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갈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묘비들이 수백 수천 끝없이 보였다. 이렇게 수많은 분들이 희생을 하셨다니...
지금도 묘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나와 우리 그리고 국가를 위해 어느덧 가족들과 현충원을 나오는 길, 할아버지와 호국 선열들께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시며 손은 흔드시는 것 같다.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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