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소감문
제 목(제9회)기억, 그 언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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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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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 언저리에
천안서여자중학교 이선미
5월 9일, 기이하리만치 낮게 가라앉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털어낼 모양이었다. 탓에 가라앉은 기분이 발치에 걸려든 것 마냥 걸음걸이가 시름에 잠겼다. 기대보다 실망이 컸던 이유는 비단 날씨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왜 하필 현충원이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에 절로 입술이 비죽여졌지만 문득 스치듯 지나간 올해가 6․25전쟁 63주년이라는 말은 나로 하여금 여태껏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손짓하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현충원 근무 교대식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우리민족의 올곧은 기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 했다.
절도 있고 정갈한 그 움직임들을 찬찬히 눈으로 쫓아가다가 발견한 것은 벽 곳곳에 새겨져 있는 조상들의 발자취였다. 그들은 전쟁의 아픔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하고 있었다. 내 나라를, 내 조국을 위하여. 그렇게 통렬히 외치며...
그들 호국열사들은 나라를 위해 영원히 가는 이들이라 불리었다. 그들의 얼이 서린 곳은 해와 달이 보호하리라던 믿음 속에서 나는 침묵했다. 그 숭고한 죽음을 두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나라를, 내 조국을 위하여. 조국을 향한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물에 흠뻑 젖은 종이에 떨어진 물감처럼 삽시간에 번져 나갔고, 굳게 다물어진 입이 좀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서해는 내가 지킨다. 극장 안에 들어가서 관람한 보훈 영상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가정의 한 가장이었고, 그와 동시에 국민들은 창과 방패라는 큰 짐을 진 사람들이었다. 2002년 당시 월드컵에 온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외로이 북한과 마주 싸워야 했던 그들의 간절함은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득 담겨져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그대로 손목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그대로 손목을 타고 감아 올라 어깨 끝까지, 빗장뼈를 타고 흉골 중앙에서 몸 곳곳으로 저며 들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들의 외침이 유난히 서글퍼 뵀다. 하물며 6․25전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가 연평해전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때문에 내 가족이, 우리 국민이 살고 있는 나라는 지켜낸다던 그들의 외침이 위벽을 다 훑어내고 있기라도 한 듯 속이 쓰렸다. 무지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윗니부터 아랫니까지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쓰게 혀를 굴렸다.
나라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가버린 이들, 그들이 남긴 목소리는 귀 언저리를 맴돌다가 귓바퀴를 타고 흘렀다. 아랫니 안쪽까지 밀려들어온 그것들은 굳게 다물어진 이들을 지분거리며 두드려댔다. 그러자 여린 잇몸에서 이가 돋아나 듯 문장들이 솟아올랐다.
역사 속에서 혹은 후손들의 기억 속에서 내 나라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킨다. 하고 곱씹어 되뇌어 보았다. 이내 그것들은 손가락 마디마디, 옴팡진 무릎 뼈 사이를 가득 채워 관절이 부딪힐 때 마다 비어져 나왔다.
영원히 흐려지지 않을 기억 언저리를 배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