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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소감문

제 목(제9회)현충원에서, ‘그 날’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4-01-14
  • 조회수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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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서, ‘그 날’

중리중학교 우연경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현충원으로 간다고 했을 때, 아이들의 반발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현장체험학습인데 그토록 바랬던 오월드가 아닌, 현충원으로 간다는 것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많고 북적거리고 볼거리가 별로 없는 오월드보다는 호국의 얼을 되살려 떠올려 볼 수 있는 현충원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다고 현충원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장체험학습은 현충원으로 정해지고, 10월 18일 2학년들이 현충원에서 모였다. 나는 화윤이 아버지께서 현충원까지 차로 태워다 주셔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현충원을 자유로이 둘러 볼 시간이 주어져, 현충원을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천천히 상쾌로운 공기를 느끼며 걷다가 유치원 때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단체로 현충원에 현장체험학습을 왔었는데, 여름이라 더워서인지 그냥 힘들다는 느낌밖에 없었다. 버스 하나에 유치원생 모두를 태우고 현충원을 가려니, 버스는 좁아터졌고 숨이 막혔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강한 햇빛 때문에 걷고 조금 움직이는 것조차 지쳤었다. 묘비 앞에서 묵념을 할 때는, 유치원 선생님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묵념을 하는 것이라고 하셔서 단순히 선생님 말씀에 따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묵념을 드렸다. 묵념이 끝난 후에는, 지루함을 떨쳐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철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내 앞에는 천마들이 있었다. 현충원 입구 양측에 있는 여섯 필의 천마의 이름은 ‘천마웅비상’이라고 했다. 설명을 읽어보니, 천마웅비상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넋을 원동력으로 하여, 여섯 필의 천마가 조국을 영원토록 약진, 번영으로 이끈다는 미래지향의 종합적 상징물이라고 했다. 정말 천마들이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달려 갈 것만 같았고, 그 모습이 거침없고 늠름해 보여 믿음이 갔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노라니 저편에서는 2학년 전교생이 모여 있었고, 나도 합류하여 호국장비전시장을 지나 보훈미래관 관람을 한 뒤, 참배를 드리기 위해 현충탑으로 갔다. 현충탑에 가기 위해서는 현충문을 통해야 했는데, 현충문에는 양 옆에 호랑이가 2마리 있었다. 호랑이가 용맹해보여, 현충문을 통해 들어가는 나쁜 기운을 막아 줄 것만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현충문을 지나 현충탑을 보니, 우뚝 치솟은 기상에 힘이 솟구치는 듯 했다. 정말 굉장히 웅장하고 기세등등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긴 두 팔이 사람들을 감싸 안아주고 있는 것 같고, 넓은 아량으로 무엇이든 포용해 줄 것만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만난 적도 없는데, 마치 잘 알던 사람같이 다정다감해 보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사람을 떨리게 하는 그런 위압감을 현충탑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충탑에 천천히 가까이 다가간 뒤, 엄숙한 마음으로 묵념을 드렸다. 그런데 묵념을 하는 동안 시끄럽게 떠들 것이라는 나의 걱정과 달리, 모든 아이들도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하고 있었다. 우리 중리중 2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싶어 많이 놀랐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현충탑의 웅장함과 그 어떤 떨림에 압도당해 묵념을 하는 동안은 잠시나마 엄숙했던 것이 아닐까?

현충탑 참배가 끝난 후에는 묘비를 닦았다. 사실 처음에는 묘비를 닦는다고 할 때, 비 오고 눈 오고 바람 불면,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묘비인데, 닦을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묘비를 닦다보니 순국선열분들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에 숙연해지고,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남은 유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짠해졌다. 아마 묘비를 닦으며 순국선열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라고 묘비를 닦으라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줄도 모르고 묘비를 닦는 일이 헛수고라 생각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다음에는 현충관에서 ‘그 날’이라는 영상을 봤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한 기자가 서해교전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유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현충원도 다녀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자는 서해교전으로 인해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서해교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것은 몇 년 전에 뉴스로 들어 알고 있었는데, 서해교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서해교전은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로 전 국민들이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을 때, 북한은 우리해군 참수리 357호를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이 고속정을 지휘하던 윤영하 대위 등 한국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돌아가시다니......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 속 서해교전으로 인해 전사한 한국 해군들의 이름 중, 내가 조금 전에 묘비를 닦다가 본 적 있는 이름이 있는 듯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 된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같은 민족끼리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우는 전쟁이, 무고한 희생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안타까운 유가족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올 때는 의례적인 행사인 양 현충원에 왔는데, 나갈 때는 좀 더 여기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천안함 46명의 용사들의 묘지에 일일이 가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다음에도 시간을 내어 그 분들의 묘비 앞에 가서 묵념을 하고 걸레도 들고 가서 그 분들의 묘비를 닦아드리고 싶다. 그리고 순국선열, 호국영령분들께 전하고 싶다.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제가, 우리가, 부강한 우리나라가 존재 할 수 있는 거겠지요. 저도 그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일꾼이 되어, 여러분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많이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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