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소감문
제 목(제9회)현충원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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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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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을 다녀와서
천안서여자중학교 박예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소풍이란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 근무교대식을 보았다. 주변 분위기가 무겁고 가라앉아 있어 근무식에 사용되는 음악도 무거운 분위기의 음악을 사용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발랄한 음악을 사용하여 재미있었다. 그 뒤에 현충탑에서 참배를 하였다. 나는 진심으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참배를 하였다. 기분이 조금 무거워지고 있었다.
다음은 ‘그 날’이라는 단편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가 월드컵으로 인하여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시끄러웠을 때 북한이 서해에서 도발한 내용을 다룬 영화이다. 나는 영화가 지겹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눈물과 죽어서도 나라를 위해 40여 일 동안 배를 지키고 계셨던 군인분등 여러 이야기가 정말 감동적이어서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 하였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저 군인들이 내 가족이거나 동료였다면, 내가 저 장소에서 싸우고 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앞에서 소중한 내 친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 듯 했다. 그리고 보훈미래관으로 이동 하였다. 보훈미래관에서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나는 특히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충분히 탈출하여 살 수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을 살리려고 마을에 추락하지 않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다가 추락하여 돌아가신 군인분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다.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이런 분들이 군인들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 뒤 밖으로 나가서 호국장비전시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장비들이 있었다. 그 장비들을 보면서 전쟁당시 군인 분들은 좋지 않은 장비들로 전쟁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분들은 가족들의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 또는 아들 혹은 아내나 부모님 형제자매의 생각을 하시면서 무슨 감정이었을까? 여기서 뉴욕 쌍둥이 빌딩의 테러가 생각이 났다. 전쟁은 아니지만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은 같다고 느꼈다. 쌍둥이 빌딩을 향해 가는 비행기 속에서 승객들이 보낸 문자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다. 전쟁 중의 군인 분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 뒤 묘비를 닦았다. 앞의 체험이 없었다면 나는 그냥 덥다, 집에 가고 싶다, 이걸 왜 하는거지? 깨끗하네 뭐, 등의 생각을 하면서 대충대충 하고 시간만 때우려 했을 것이다. 웃고 떠들거나 뛰어다녔을 지도 모른다. 묘비를 먼저 닦았다면 나중에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읽고 여러 가지를 보고 난 뒤 묘비를 닦으러 가니 대충 대충 할 수가 없었다. 묘비를 보면 감사드리는 마음과 경건한 마음이 생겼다. 닦는 것도 꼼꼼히 하게 되고 웃고 떠들만한 기분도 생기지 않았다. 묘비 한 개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닦고 인사를 했다. 묘비가 있는 곳은 정말 넓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묘비가 빼곡하게 차 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구간도 많다고 했다. 도대체 몇 명의 분들이 희생되신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의 무서움과 위험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요즘 북한이 핵실험도 하고 여러 가지로 전쟁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웃어 넘겼던 것이 떠올랐다. 이 묘비들을 보니 그렇게 웃어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예전보다 더욱 발달한 무기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도 많이 다칠 것 같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가족들의 슬픔 등으로 힘들 것 같다. 집에 와서 오늘 소풍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본 것이나, 묘비를 닦은 일, 여러 가지 체험을 한 일 등 현충원을 많이 가보았지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느낀 날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제 웃음으로 넘겼던 북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