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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소감문

제 목(제10회)「바로 내가 해야 할 일」천안서여자중학교 김민영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4-12-24
  • 조회수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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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나라사랑 체험소감문 수상작 - 중등부 최우수상
「바로 내가 해야 할 일」
천안서여자중학교 김민영

지난 주 토요일인 2014년 9월 27일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단체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작년에도 갔던 국립대전현충원이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국립대전현충원을 가는 것이 너무 설레었고 현충원을 가는 날인 9월 27일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진정으로 어서 가서 인사를 드리고 비석을 닦아드리고 싶었었다. 그 전날인 금요일에 비가 왔던 터라 비석을 닦지 못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잠이 들었는데 다행이도 비는 오지 않고 오후에는 덥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내가 간절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하셨을 지도 모르겠다.
국립대전현충원 입구에 들어오면서 제일 놀랐던 것은 넓은 녹색지대에 있던 수천 개의 비석들이었다. 작년에도 봤던 모습이지만 정말이지 볼 때마다 가슴시리고 애잔하고 울컥하게 된다. 저렇게 많은 분들이 모두 나라를 지키시다가 혹은 나라를 위해 일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시게 된 분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볼 때마다 정말 믿을 수 없고 실감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 후 현충문에 가서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을 기리며 묵념을 했다. 묵념을 하며 나를 이 자리에 이렇게 있게 만들어주신 많은 순국선열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그 분들께서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기에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의견을 존중받으며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현충문에서의 묵념이 끝난 후 우리는 보훈미래관으로 향했다. 그 곳의 1층에는 시위를 벌여 대항을 하다가 아주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제작하여 수상을 한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만화를 보면서 더 놀라웠던 사실은 그 당시에 시위를 하다 희생당하신 분들이 모두 우리와 비슷한 중고생들이었다는 것이다. 어쩜 그렇게 어린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까지 대항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그 목숨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업적을 보았다. 정말 후손들을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신 모든 분들의 죽음을 절대로 잊지않음으로서 헛되게 하지도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보훈미래관을 관람하고 나서 현충관으로 가서 호국영화를 보았다. 이 호국영화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던 탓에 세상에 잘 알려지지 못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훈련을 하고 있던 최전방 해군들은 연평도를 향한 북한의 갑작스런 도발에 대응을 하고 있었다. 도발에 쉽게 걸려들지 말고 명령에 따라 행동을 했었어야 했던 우리 해군들은 북한의 무차별한 폭격에 대응을 하다가 끝내 배가 침몰되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어버렸다. 더 내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끝가지 우리나라의 바다를 지키던 용감무쌍한 해군들이 모두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이었다는 것이다. 모두 한 가정의 아버지이거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귀한 아들들인데 그렇게 쉽게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은 유가족들에겐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너무 가혹한 현실일 것 같았다. 또 지금 내가 마음 편히 집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가 군대에서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군복무를 하고 계실 군인들을 생각하니 정말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북한과 같은 한민족인데 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우리나라의 이런 분단된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북한과 우리나라가 평화 통일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전쟁가능성으로 인해 생긴 안전 불감증은 해소되고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결합한다면 눈부신 경제발전을 꿈꿈 수 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이런 근심걱정을 안고 드디어 비석을 닦으러 경찰관 묘역으로 갔다. 정말 푸른 잔디밭에 꽃혀 있는 수 백, 수천 개의 비석을 보노라니 왜 이렇게 많이 돌아가셨나 하는 원통함마저 생겼다. 몸을 전혀 사리면서 일을 하시지 않고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힘쓰다가 돌아가셨을 경찰관 분들을 떠올리니 뭉클하고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멋진 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비록 아주 작은 일이지만 인사를 드리면서 비석을 닦고 있으니 비석의 주인분께서 환한 미소로 웃어주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닦게 되었다.
또 이렇게 맡은 바 임무를 다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비석을 닦고 있노라니 나는 내 위치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이 이분들의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일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학생인 나의 위치에 맞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우리의 역사를 더 자세히, 정확하게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곳곳에서 우리를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의 노고를 더 알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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