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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경찰
- 성명경위 강삼수
- 묘소위치경찰 1묘역 502-967
- 출생/사망 시기 1923.2.20 / 1972.10.23
- 출생/사망 지역 경남 산청 / 경남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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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삼수 경위는 경삼남도 산청군 금서면 출신으로. 동네 청년들이 다수 가담했던 남로당 민애청(民愛靑)이라는 조직을 친구들로부터 가입하라는 권고를 받고 그 조직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친구가 써 온 가입 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가 자기가 속한 조직이 뭐가 잘못된 것이고 반국가적이라는 것을 알고 1949년 스스로 산청 경찰서에 출두해 자수하였으며, 산청 경찰서 전투 경찰대장은 백남현 경위를 만나면서 대공 투쟁을 결심하고 비공식으로 사찰과에 배속되어 좌익분자 타동에 앞장섬
1950년 6‧25전쟁 중 산청 경찰서 관내는 공비들이 창궐하자 강삼수는 전투마다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다음해 1951년 1월에 경찰 학교에 입교하여 소정의 훈련을 받고 졸업하여 비정규직 순경에서 정규직 순경이 되었으며, 그가 지리산 산청군 일대에서 소탕했었던 전공으로 순경에서 경사를 거쳐 경위로 진급함
1951년 9월 11일 오전 6시 금서면 새롭재에서 사찰 유격대장 강삼수 순경은 정상도, 김두갑, 권영도 순경들을 이끌고 잠복 근무중 공비 약 200명이 식량 약탈차 하산하고 있는 것을 기습, 적 2명 사살, 8명 생포, 칼빈 소총 1정을 노획함
1951년 11월 8일 금서 화계 주둔 소장인 박동천 경사로부터 국수봉에 적 57사단 소속 150명이 집결한다는 제보에 그의 사찰 유격대원 10여명을 적의 퇴로에 배치하고, 다음날인 9일 새벽 1시경에 수류탄을 일시에 투척하적 23명 사살, 총기 6정등 실탄 700발 등을 노획함
1951년 12월 16일 새벽 3시 화계리에서 공비들이 이동중이라는 정보를 접한 강삼수 경위는 대원 10명과 함양군 휴천면 노장대에 매복 기습해 적 사살 9명, 생포 2명, 소총 6정을 노획하였으며, 1951년 12월 30일 오전 6시 금서면 고등고개 일대에서 적 57사단 소속 100여명이 운집되어 있는 것을 발견, 선제 기습하여 적 20명을 사살하고 소총 6정을 노획함
1952년 1월 5일 19시 30분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과 산청군 금서면 간에 있는 군 경계의 무명고지에 산청 경찰서 화계주둔소장 강삼수 경위 외 8명이 군경 합동 토벌전에서는 적 57사단 3연대의 공비 70여명이 식량약탈을 목적으로 마을로 접근중임을 발견 기습 공격하여 적13명 사살, 소총 8정을 노획함
1952년 1월 15일 14시 강삼수 경위외 12명이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에 있는 향양리 어운동천마산을 수색중 아지트에 은거중인공비 40명과 교전하여 적2명 사살, 생포 2명, 총기 2정, 실탄 200발을 노획하였으며, 2월 18일 조개골 깊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급습, 적 13명과 부상 공비 1명을 생포하고 총기 6점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둠
1952년 3월 18일 15시 산청 경찰서 화계 주둔소에서 경계 근무를 수행하고 있던 강삼수 경위의 사찰 유격대 12명은 지리산 줄기 중에서도 으뜸가는 악산 골짜기로써 공비들이 은거하기에 좋은 험준한 지형인 삼장면 조개골 수색을 위해 삼장면 대원 계곡과 유평(油坪)골짜기를 거쳐 조개골에 이르러 수색 중 계곡 아래에서 물을 뜨러 내려온 공비1명을 발견하고 이를 미행, 적 57사단의 잔비 30여명이 집결하고 있는 아지트를 발견하고 이를 급습, 적 사살 21명, 총기 7정을 노획하였으며, 4월 3일 새벽 3시 금서면 쌍효 부락 뒷산에 대원11명과 매복 중 공비 제4지대원 40명이 접근하는 것을 발견, 공비들이 최단거리까지 접근하도록 기다렸다가 2시간에 걸친 총격전 끝에 공비 9명 사살, 각종소총 3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둠
1952년 7월 6일 금서지서가 공비들의 기습을 받고 있다는 긴급 사태를 보고받고 출동한 사찰 유격대장 강삼수 경위 외 13명의 대원은 적의 예상 도주로를 따라 추격했으나 적을 발견하지 못한채 금서면 구사 부락 뒷산인 쌍재 고지에서 철야 매복하여 7월 7일 오전 6시, 공비 20여명이 접근 중임을 감지하고 이를 기습 공격해 적 사살 2명, 생포 1명, 소총 1정, 불온 문서 다수를 노획하였고, 10월 10일에는 삼장면 유평리 소재 토망골에 이현상부대 잔당들이 침입하여 양민을 학살코자 하자 공비들을 공격하여 공비 11명 사살, 1명 생포, 총기 2정과 실탄 다량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둠
강삼수 경위는 산청 경찰서의 사찰 유격대장으로 62회의 전투를 겪으며 322명의 공비를 사살하고 화랑무공훈장 4개, 표창장과 감사장만 41번이나 수여 받았으며 1962년 경찰을 떠나, 국가발전에 이바지함을 사명으로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1972년 10월 23일 진주에서 사망함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2014년 5월 31일 국립대전현충원 경찰 제1묘역 502-967호에 안장하여 추모하고 있다.
「대전현충원묘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