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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소감문

제 목(제11회)『현충원 나라사랑체험학습을 다녀와서』 대전수정초등학교 길재호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6-01-08
  • 조회수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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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나라사랑 체험소감문 수필부문 수상작 - 초등부 장려상
『현충원 나라사랑체험학습을 다녀와서』
대전수정초등학교 길재호



오늘은 학교에서 나라사랑체험교육을 하러 현충원에 가는 날입니다. 우리가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서 현충원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체험교육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학교 대표로 가는 것이라 뿌듯했고 학원을 빠질 수 있고 게다가 음료수와 간식을 학교에서 준비해주셔서 더 좋았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사실 저는 이 말의 뜻을 잘 모릅니다. 그냥 ‘나라 사랑과 관련된 말이겠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친구가 먼저 선생님께 질문을 해서 호국보훈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자로 보호할 호(護), 나라 국(國)으로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마음과 갚을 보(報), 공로 훈(勳)으로 그 공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인터넷사전을 검색해보니 ‘현충일, 6‧25 한국전쟁, 6‧29 제 2연평해전이 모두 일어난 6월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 보훈처에서 지정한 달’이라고 합니다. 이제 함께하지 못한 우리 반 친구들에게 ‘호국보훈’ 말의 뜻을 자신 있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충원의 첫 인상은 아주 넓고 한적하다는 것 입니다. 저희 집과 학교에서 가까이 있지만 사실 처음 와본 곳입니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이 자란다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는 마치 우리가 그림 속의 풍경과 하나가 된 것 같았습니다. 역동적인 동상들, 분수대의 물줄기, 한적한 연못과 잔디밭, 잘 가꾸어진 산책로에서 내 시계가 멈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참배를 위한 현충탑이었습니다. 현충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위훈을 추앙하려고 만든 탑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현충문에서 옷을 단정히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참배를 하러 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향냄새가 잔잔히 퍼져 왔습니다. 향냄새만으로도 마음이 더 경건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참배를 마치고 보훈 미래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짧지만 감명 깊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목은 ‘그 날’이라는 영상이었는데 처음에는 시시한 영화겠지 했지만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오면서 눈을 마주친 선생님도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눈과 코가 빨개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영상이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저는 우리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언제든지 전쟁이 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연평해전은 우리나라의 분단현실에서 겪었던 역사적 사건이었고 아픔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돌아와서 연평해전에 대해 더 조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숙제도 아닌데 이것저것 더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29일은 우리 형이 태어나기 딱 1년 전이라고 합니다. 우리 형 생일이 6월 25일인데 연평해전은 형이 태어나기 1년 전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슬픈 일이었던 것 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와 축구 경기가 있으면 모든 국민들은 뜻을 모아, 힘을 모아 텔레비전 앞에서 응원을 하며 경기를 지켜보듯이 2002년 6월에도 한·일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가운데 서해 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전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며 뉴스를 봤다고 합니다.

연평해전, 그 전투의 시작은 1999년부터라고 합니다. 1999년 6월 7일부터 14일까지 북한 경비정이 어선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하면서 침범 및 철수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을 이용하여 북한 경비정의 선체 뒷부분을 부딪쳐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3년 뒤. 2002년 6월 29일 2002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북한은 다시한번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무력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도 참수리 357호와 358호가 대응사격을 개시하는 한편 인근의 제천·진해함(PCC)과 참수리급 경비정 4척을 투입해 격파사격을 실시하였습니다. 이 교전은 오전 10시 56분까지 31분간 진행된 후 북한의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 북으로 퇴각함으로써 종결되었다고 합니다.

나라에서는 2008년 4월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이 전투를 ‘제2연평해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올 해는 광복 70년이자 남북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올 해 80세가 되셨는데 할아버지께서 나만큼 어렸을 때 한국전쟁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전쟁은 끔찍하고 몹쓸 것이라며 다시는 일어나면 안돼는 비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계에서 같은 민족이면서도 분단이 된 나라는 우리 한반도뿐이라고 합니다. 저도 우리 형도 자라서 청년이 되면 군대에 가야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저도 연평해전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국군 아저씨나 형들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고 슬퍼집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지고 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차갑게 식는 것 같고 눈물이 납니다.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되어 제3의 연평해전도 일어나지 않고 남과 북이 사이좋게 멋진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무를 다하다 희생된 국군 아저씨들과 소중한고도 사랑스러운 아들과 아빠와 남편을 잃은 가족들이 느껴야 하는 슬픔과 가슴 아픔을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우리가 갔던 현충원. 그 곳의 비석들과 그 앞에 놓여있던 꽃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고 기억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드립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국군 아저씨, 국군 형들! 천국에서 힘내시고 우리나라 위해 축복해주세요. 그리고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씩씩하고 훌륭하게 자라서 우리나라 위해, 이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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