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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소감문

제 목(제11회)『이 나라를 지키자! 대한민국 호랑이들』 신탄진초등학교 이승배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6-01-08
  • 조회수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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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나라사랑 체험소감문 수필부문 수상작 - 초등부 장려상
『이 나라를 지키자! 대한민국 호랑이들』
신탄진초등학교 이승배



“승배야, 8시 넘었네. 빨리 일어나!”
“하암” 나는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오늘은 대전국립현충원에 가는 날이다. 볼만한게
뭐가 있다고 가는지 나는 옷을 입고, 준비가 되자 우리 가족은 현충원으로 갔다.현충원은 그야말로 묘비가 드넓은 들판을 수놓듯이 많았다. 현충원에는 6.25참전군인들뿐만 아니라 사회공헌자, 독도의용수비대, 소방공무원, 경찰, 애국지사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계시다고 한다.
우선 묘역에 가기 전에 우리 가족은 현충문을 지나 현충탑으로 갔다. 현충탑에는 수많은 사람동
상이 있었다. 아빠가 현충탑의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한 뒤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은 그 때 이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 분들에게 고마워해
야한다. 만약 우리가 6.25전쟁때 사람이고, 이 분들이 현재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 분들을 위
해,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하는 거야. 때문에 우리는 미래의 후손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단다.”

아빠의 말씀을 듣고 나는 울컥하였다. 나는 현충탑에 절을 올리며 ‘이 분들의 희생을 더 값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통일된 세상을 물려줄 책임이 있어’라고 생각하였다.
터벅 터벅 나는 걸을 때마다 생각하였다. 과연 6.25전쟁이 끝난 것일까?
1953년, 휴전을 하고 난 뒤, 현재 북한은 핵폭탄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가진 핵 보유국이 되
었다. 그리고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 등.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낼 때 우리 군인아저씨
들은 목숨을 걸고 소리 없는 전쟁을 펼쳤었다. 난 공모전 작품들을 보던 중 한 가지가 매우
인상깊게 보였다. 바로 학도병들의 이야기와 고지전투 이야기였다. 먼저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71명의 어린 소년들이 우리 국군의 재정비시간을 위해 싸운 것으로 나는 특히 이우근이라는
학도병의 편지를 보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상추쌈이 먹고 싶다며 편지를 다음에 또 쓰겠다고 아니 반드시 쓸 거라고 말한 이우근 학도병
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우리처럼 한창 공부할 나이에 전쟁 속에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죽은 학도병들이 너무 불쌍하면서도 매우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북방 425고지전의 한준이라는
군인아저씨는 다른 전우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 고지를 지켜내었다.
“어때? 현충원에 오기를 정말 잘했지?”

갑자기 엄마가 말하였다. “아니요! 솔직히 생각보다 시시해요. 지루하고요!”
나는 사실 지금까지만으로도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괜히 튕기며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그래? 하지만6.25때 우리 나라 사망자 수는 우리 대전 인구의 몇 배가 넘었다는 사실을 알면
달라질걸?”
“뭐라고요? 대전 인구의 몇 배가 넘는다고요? 그럼 거의 서울인구와 똑같잖아요!”
나는 사병묘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가 하하호호 웃던 시간을 만들어주신 이 군인아저씨들
께서 총알 한방의 아픔과 무서운 굉음으로 고막이 찢어져도 끝까지 총을 들고 다른 이들을 위
해 싸우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는 듯 하였다.

아마 이 호국영령들은 우리 눈에 안 보여도 이 나라를 사랑하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
을 것이다. 아빠의 차가 부릉부릉 장교묘역에 다다를즈음 내 동생 준배가 소리쳤다.
“여기 봐. 이 국립현충원에 대통령 묘가 있나봐.”
“어디?”
나는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준배를 바라보았다. 그 때 엄마가 말해주셨다.
“아참~.이 곳에는 제 10대 최규하 대통령이 계시단다.”
나는 전두환이나 노무현, 김대중, 박정희라면 모를 까 최규하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우리 장교묘역을 둘러보고 나서 최규하대통령도 보러가자꾸나”
그냥 6.25전쟁 때 전사하신 군인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너무나 볼 것이 많아서 하루만에 다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장교묘역은 사병묘역보다 크지만 그 수가 매우 적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준장, 소장, 중장, 대장 식으로 나올 거 같았다. 육군준장 , 해군소장,
공군 준장 등 정말 다양하였다. 이제 그만 가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
았다. 준배도 같이 와서 보았다. 준배역시 계속 돌면서 보았다. 그렇게 맨 위까지 올라왔다.

그 곳은 이 6.25의 리더들이 잠들어 있는 대장, 중장들의 누워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중장이자
장관인 사람도 계셨다. 한 때 이 나라를 이끌었던 잊지 말아야할 훌륭한 리더들. 바로 그들이
계신 곳이었다. 엄마 아빠도 맨 위에 올라오자 우리 가족은 다함께 묵념을 하였다.
묵념을 한 뒤 나는 묵묵히 대통령 묘소로 갔다.
아마 리더들은 리더로서 책임을 가지고 가족을 영원히 못 볼까봐 두려워 하는 군인들의 마음을 용기로 바꾸어주고, 위험한 일에 먼저 나서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나도 언젠가 훌륭한 리더가 되고야 말겠어.’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도착이다. 멀리서도 커다랗게 대통령의 묘가
보였다. “역시 대통령은 다르구나.”
나는 저절로 입이 벌어지며 말이 나왔다. 가까이 가자 그곳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오셨다갔다는
표시가 있었다. “우리 이 곳에서도 대통령님께 묵념을 하자꾸나”
우리는 그렇게 약 1분간 묵념을 한 뒤 마지막으로 보훈미래관이라는 곳에 갔다. 특히 이 곳에
기대가 많았다. 아빠가 보훈미래관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게 많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정말로 전 시공간으로 마련하여서 볼 것이 매우 많았다.특히 천암함 용사들의 사진을 볼 때가 인상 깊었다. 준위부터 일병까지 당찬 모습의 해군들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그리고 태극기 그리는 방
법이라는 체험 부스가 하나 있었다. 대충 태극무늬에 건, 곤, 감, 이만 그려넣으면 되는 줄 알
았지만 생각보다 제대로 된 태극기를 그리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엉성한 태극기를 그린 후
이제는 집에 가기 위하여 우리 가족 모두 차에 탔다. 실제로는 하루도 안 되지만 나는 6.25전
쟁년과 같은 3년을 있었던 기분이다. 나는 아직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의미를 잘 모르지
만 말로 표현을 못하여도 속으로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다음에는 나라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찾기 위해 현재까지 내가 아는 나라사랑을 실천하겠다. 그럼 진정한 나라사랑을 찾을때까지 박
찬 노력을 가하도록 하겠다. “이 나라를 지키자! 대한민국 호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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