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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삼촌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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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들, 잊지 않겠습니다


2002년은 우리나라에 아주 큰 행사 원드컵이 있었던 해였다고 배웠습니다. 나는 상상도 할수 없지만, 2002년에 온 나라가 붉은 악마의 붉은 옷을 입고 한마음으로 응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축구팀은 월드컵에서 제일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연평 해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월드컵의 분위기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던 그 때였습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25전쟁이후로 우리의 땅을 금을 그어서, 서로 넘어오지 못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도 그렇게 금을 그어 놓고 서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금을 그어놓고, 그리고 그 바다위에 NLL이라는 지역을 만들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2002년이 되기 전에, 북한의 해군이 남한쪽으로 어선들과 같이 밀려서 내려오고, 그리고 우리 남한의 해군이 적극적으로 대음을 하지 못하고 그냥 소극적으로 배를 밀어내는 경우가 있었고, 그러던중 북한의 배가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까요? 제2의 연평해전이 일어난 이유를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수가 없습니다. 북한도 왜 그날은 그냥 서로 서로 밀고 밀리기를 하지 않고, 집중 사격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 차수리 375호는 그냥 자기 자기만 지키려고 한 것 같았는데, 북한의 배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그날은 참수리 375를 끝내 바다속으로 밀어벼렸습니다. 그날 참수리 호에는 우리의 삼촌, 아니 우리 아빠와 같은 군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얼마나 슬펐을까요? 그날 배에 타고 있는 군인분들은 우리 사촌형이 될수 있고 우리 옆집에사는 형이 될수도 있고 그리고 나의 형,그리고 나의 아빠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 충격이였습니다.
원래, 군인은 군대에서 복무하면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나라를 지켜야 했다면 아무도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나는 애써 상상할수 없고 생각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 분들이 계시고 그리고 그분의 붉은 피가 서해 바다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에 있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때의 우리 독립군들이 만주 벌파에서 흘렸던 그 붉은 피가 다시 서해 바다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별이 되었던 우리 독립의 열사들이 생각이 날때면, 나는 우리 연평해전에서 별이 되신 우리 군인 삼촌들도 같이 생각이 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삼촌들.
삼촌들의 그 뜨거운 마음을 잊지 않을게요. 저도 그 마음을 가질수 있도록 항상 삼촌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박주원 목포부설초등학교 6학년 2반
010 8841 9846

어머님 번호 김은정 010 8605 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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