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추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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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장병의 일기

계룡산 품 안에 나는 오늘, 한 젊은 전우의 육체를 묻는 안장식에 다녀왔다.

오월의 하늘가에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아카시아 향기처럼 찢어진 전투복 조각들이 흩어져 내렸다.

살아 있어서 부끄러운 수많은 육신들이 고개를 함께 숙이고, 검은 리본의 사진이 가고, 살아 있는 자에게 들려진 최고의 명예 훈장이 가고, ‘피해! 위험해!’ 외침을 마저 하지 못한 영정이 가고, 검은 옷차림의 흐느끼는 누나가 가고, 고개 들어 뒤 돌아서 버린 주름진 아버지가, 안장식을 위해 도열한 조총을 든 의장병의 앞을 지나갔다.

흐느껴 울어 줄 어머니, 어머니도 없이 대지의 어머니에게로 그렇게 돌아갔다. 고인의 용기를 찬양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살아 있는 자의 조사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 나가서 흐드러지게 어깨를 껴안고,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 한잔 마시자던 우리의 맹세는 내 귀에 쟁쟁한데, 나는 당신을 대신하여 여기 술 한 잔을 올립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들어 바라본 계룡산 하늘은 너무나 푸르렀고, 파리한 사금파리처럼 나의 가슴을 저며 와 살아 있음에 미안함으로 슬픈 눈물을 흘리게 했다. 나라면 전우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폭탄 앞에 작은 내 청춘을 던져, 나의 조국을 위한다는 작은 의미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까?. 하루종일 그치지 않는 질문은 내게서 떠날 줄 몰랐다.

국군은 죽어서 무엇을 말하는가? 서로가 애국자라고 하며 화염병에 분신 자살까지 하는데, 국군은 뼈도 없이 흩어져 버렸는데, 산화한 국군은 무엇을 말하는가? 살아 있는 자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그에게 청춘(靑春) 이란 단어를 말했다. 나는 ‘초원의 빛’이라는 워즈워스의 시를 생각 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빛이 다시는 들려지지 않는다 해도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빛을 찾으소서’. 우리의 생(生)이 시간으로,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현재에 살며 오늘도 지나간 과거를 되새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과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묘비에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 수 없기에 영원히 초원의 빛으로 꽃의 영광으로 모두의 가슴속에 내일도 남아 있을 것이며,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 앞에 가장 훈련된 의장 행사병의 자세와 엄숙함으로 경례의 받들어 총을 올립니다. ‘충 성’

고이 잠드소서 이동진 중위님   1988년 6월

 

최근에 60이 넘어 은퇴후 일기장을 정리하다 위와 같은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관련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1988년 5월 4일, 중부전선 육군 제15사단 승리부대 작전지역에서 대인지뢰 매설 작업 중 폭발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전초대대장 강병식 중령과 소대장 이동진 중위는 지뢰가 폭발하려는 순간, 부하 장병들에게 “엎드려!”라고 명령한 뒤 자신들의 몸을 지뢰 쪽으로 던져 장병들을 보호하였다.
두 지휘관의 희생적인 행동으로 15명의 부하 장병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나, 두 분은 끝내 순직하였다.
강병식 중령(당시 전초대대장)과 이동진 중위(당시 소대장)는 1988년 6월 국립대전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되었다.

현재 두 분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제1묘역 202묘판 385호와 386호 묘소에 나란히 잠들어 있으며, 군인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부하를
지킨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이런 내용 이었습니다. 제 기억과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제1묘역 202묘판 385호와 386호 묘소에 잠들어 계신분이 맞다면 한번 찾아가 헌화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혹시 관계자 분들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댓글 달아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가능하시면 avacajo5388@naver.com 으로 회신 주셔도
감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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