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 외손주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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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위에 내려앉은 마른 잎 하나에 당신의 야윈 손등이 겹쳐 보입니다. 할아버지, 대전현충원의 하늘은 오늘 어떤 빛을 띠고 있나요. 당신께서 흙으로, 바람으로 흩어지시던 그 서러운 날, 저는 숨 막히는 고3 교실의 좁은 책상머리에 이마를 박고 있었습니다. 대학이라는 허상, 그 알량한 합격증 한 장을 쥐어보겠다고 당신의 마지막 숨결이 잦아드는 순간조차 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의 얄팍한 펜촉이 당신의 굽은 등보다 무거웠을까요. 살아생전 이 못난 핏줄은, 당신의 임종조차 외면한 채 오직 내 앞길만을 좇아 달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엄마의 손에 꼭 쥐어주셨다던 그 쌈짓돈. 우리 손주 꼭 대학 가면 등록금에 보태라며, 굽은 허리로 평생을 아껴 모으셨을 그 눈물겨운 돈을 저는 결국 대학 등록금이 아닌 학원비로 허투루 날려버렸습니다. 당신의 피와 땀이 서린 그 돈을 삼키고도, 저는 몇 번이나 수능이라는 벽 앞에 고꾸라지며 의대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잃어가며, 당신의 헌신을 갉아먹으며 달려온 길이었는데 저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보다, 사랑하는 이를 외롭게 떠나보낸 자의 회한이 이토록 살을 에이는 것임을 이제야, 당신의 차가운 비석 앞에서 통곡하며 깨닫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제가 끝없는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그 캄캄한 밤. 위로받을 자격조차 없는 제 꿈의 끄트머리에 당신이 찾아오셨지요. 중앙보훈병원의 하얀 병실, 환자복을 입고 누워계신 할아버지 곁으로 제가 걸어 들어갔습니다. 낡은 수험생의 겉옷이 아닌, 새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당신의 주치의가 되어 차트를 들고 섰던 그 생생한 꿈. 창백한 당신의 손을 맞잡았을 때 제 손끝으로 전해지던 그 서글프고도 벅찬 온기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평생을 자책할 손주를 향한 당신의 외로이자, 쓰러지는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건너온 당신의 절박한 동아줄이었겠지요. 그 꿈 하나로 저는 아직 이 질긴 끈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올해가 정말 저의 마지막 수능입니다. 더는 당신의 이름에, 당신이 남겨주신 사랑에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보훈병원 병상에서 저를 바라보시던 그 인자한 눈빛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주치의가 되었던 그 벅찬 환희를 현실로 만들어 내겠습니다. 이 길고 지난했던 방황의 끝에서,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의과대학에 합격하는 그날, 가장 먼저 김천으로 달려가겠습니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숨 쉬셨던 그 김천 하늘 아래, 가장 잘 보이는 네거리에 '우리 손주 의대 갔다!'며 당신이 그토록 자랑하고 싶어 하셨을 커다란 현수막을 제 손으로 걸겠습니다. 그리고 하얀 가운을 입고 다시 이곳 대전으로 와, 당신의 비석 앞에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엎드리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저의 죄스러움보다 더 큰 당신의 사랑을 안고, 올해는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편히 쉬시며, 이 못난 손주의 마지막 비상을 지켜봐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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